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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활동적인 아이였다. 항상 무엇이든 궁금한 건 참지 못했고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유치원을 다닐 땐 하도 산만해서 거의 매일을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천진난만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다. 항상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선호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기분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듯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은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도 축구나 농구 등 스포츠활동을 즐겨했고 공부는 중간 정도 했다. 한 때 체육에 관련된 진로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특출 나게 잘하는 종목은 없었다. 그냥 노는 것이 즐거웠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휠체어에 앉기 전까진 정말 뭐든 다 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 서울에 올라가서 수술을 했다. 살면서 크게 아파본적도 없고 오랫동안 수술을 해본 적도 없다. 고등학생 때 축구하다가 엄지손가락 뼈가 부서진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수술 후 망가져버린 내 몸을 보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꿈인 줄 알았다. 며칠 뒤면 마비가 풀리겠거니 생각하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수술한 지 1년이 넘어갔다. 지난날의 그 순간들은 여러모로 힘들었다. 지금 와서 보면 어떻게 스스로 버텨냈는지 대견할 정도다.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한다는 의사들의 말과 다시 걷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담당 물리치료사들의 가혹한 말을 묵묵하게 듣고 있었으니 말이다. 의학적으로는 보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듯이 처음부터 차근차근 몸에 익히면 되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아직은 혼자서 일어날 순 없지만 보조기구와 보행기를 이용해서 혼자서 어느정도 걷는 폼이 나오고 있다. 물론 완벽하진 않지만 보행연습을 올해 6월 말쯤부터 천천히 시작했으니까 6개월도 채 안 된 사이에 많은 발전을 했다. 처음엔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허리가 휘청거리고 상체에 과도하게 많은 긴장과 힘을 주다 보니 자연스레 어깨와 목에 자극이 가버렸고 통증이 생겼다. 그래도 멈추진 않았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 지팡이라도 잡고 걷지라고 생각했다.

 

목표는 1년. 그안에 뭐든 시도해보고 한 번이라도 더 움직여서 혼자서 걷는 것. 그것이 나의 계획이다. 나는 휠체어가 싫다. 발이 묶여버리니 어디로든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여행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고 문화생활도 좋아하는데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남은 인생을 두 바퀴에 의지한 채 보내기 싫었다. 장애인의 삶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더 이상 노력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장애인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스스로에게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새각한다.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고 매일을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두 다리로 일어설 때 그때의 나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수고했다고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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