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눈을 떠서 이 닦으러 화장실에 간다. 간단한 세안과 양치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표정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그냥 무표정이라고 할까.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는 로봇처럼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하루에 말을 크게 많이 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6인실에 있으면서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끼리는 서로 대화도 하고 시끌벅적한데 나는 그러질 못한다. 대부분 다 어르신들이고 굳이 그들과 섞여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래도 한 가지 고마운건 친구들이 주말마다 한 번씩 면회를 온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해져서 면회는 일절 금지이지만 병실 안까지는 안 들어오고 건물 내에서는 만날 수 있다.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은 나의 일주일 중 가..

벌써 한 해가 지나가는 시간이 다가왔다. 병원에 있으면서 참 안 갈 것만 같았던 시간들이 생각보다 엄청 빠른 속도로 지나간 듯하다.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했을까? 참 다사다난했건 한해였다. 그냥 단순하게 다리가 뻣뻣해진 게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했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사실 그것은 내 몸에 대한 일종의 경고신호였을지도 모른다. 26살부터 시작했던 나의 재활치료도 어느덧 27살이 지나 28살을 향해 가고있다. 어쩌면 한없이 추락할 수 있었던 내 마음과 생각들이 잘 버텨내 준 것 같아 고마웠다. 이렇게 오랫동안 병과 싸운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떠올려보니 사람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겉으로 티내진 않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쳐다..

'나를 소중하게 대할 줄 알아야 남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다' 책에서 본 글귀가 떠올랐다. 우린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느낀다. 친밀감, 사랑, 배신 등으로 뭉친 것들이 우리를 마주치게 한다. 20살 땐 그런 것들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길 좋아했고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들이 재미있었다. 피해 주는 것도 싫어하고 피해받는 것도 싫어했던 나는 쉽게 상처도 받았다. 모두가 나를 좋아해 줄 순 없지만 나를 싫어했던 사람들에겐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다. 먼저 사과하기엔 자존심 상했고 제대로 된 얘기한 적도 없었다. 남의 감정 하나하나 살피기엔 너무 신경이 많이 쓰였고 한번 틀어진 관계나 사건에 대해서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혔다. 왜 그땐 나를 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활동적인 아이였다. 항상 무엇이든 궁금한 건 참지 못했고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유치원을 다닐 땐 하도 산만해서 거의 매일을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천진난만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다. 항상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선호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기분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듯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은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도 축구나 농구 등 스포츠활동을 즐겨했고 공부는 중간 정도 했다. 한 때 체육에 관련된 진로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특출 나게 잘하는 종목은 없었다. 그냥 노는 것이 즐거웠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서는 것을 좋아했다. 휠체어에 앉기 전까진 정말 뭐든 다 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 서울에 올라가서 수술을 했다.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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