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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종양 재활일지

[재활일지] playlist

스물일곱청년 2020. 12. 5. 13:38

가끔은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옆 방 환자들의 소리, 병원 안에서의 소리, 아프다고 비명 지르는 소리들이 들린다. 그것들이 모여서 나를 어지럽게 하고 화가 나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예전엔 내 플레이리스트에선 감미로운 발라드나 잔잔한 음악들이 많았다. 그런 음악들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온갖 잡생각들과 소리들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다 내가 자주 듣는 곡들을 찾아보았다. 내 취향은 어떤 유형의 곡들일까? 잔잔하지만 분위기 있는 R&B 힙합이나 가사 내용들은 힘든 현실에 맞서 싸우는 곡들이었다. 혹은 시원한 바다와 맥주를 먹을 수 있는 바닷가가 생각났다. 아마 나는 무의적으로 그런 곡들을 찾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음악으로라도 그런 멋진 풍경을 보고 싶었다.


겨울이지만 올해의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다. 하루의 절반을 재활운동에 쓰고 남는 시간엔 조금이라도 걸어보려고 연습하고 샤워를 하고 나면 해가뉘엿뉘엿 진다. 그래서 나는 아침의 해를 보고 나면 오랫동안 바깥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코로나 덕분인지 환자들이 밖에 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뭐 물론 좋은 점도 있다. 겨울마다 우리 집은 항상 추웠고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이곳은 과할 정도로 따뜻하다. 왜냐면 노인환자들이 많다 보니 금방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온도를 항상 유지한다. 집에 있었을 땐 우리 집 강아지를 끌어안고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가 나오질 않았었다. 날씨가 추워도 포근했던 기억들이 마음을 환하게 밝혀줬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그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아닌 날이지만 따뜻했던 어느 날의 추억 말이다.


혼자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소중한 인연들.

홀로 병원에 있으면서 참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지난 7개월 동안 서울에서 힘들게 재활운동을 했던 기억,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보며 한숨을 쉬었지만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준 또래 환자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가끔은 궁금해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서로 응원하기도 한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떠한지, 오늘은 어떤 맛있는 음식이 나왔는지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웃는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가 남은 인생을 지혜롭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가끔은 의문이 든다. 멋있게 다시 일어나서 안될 거라 했고 부정했던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가진 것 없고 쥐뿔 없는 놈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강한 마음으로 희귀병을 이겨냈다고. 인구 10만 명 당 3~10명이 걸리는 말도 안 되는 확률에서 선택되어버린 내가 신을 원망하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지만 극복했다고.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고 나를 도와줬던 모든 이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전래 동화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한번 은혜를 입은 여우는 반드시 그 은혜를되갚아준다'. 내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켜보며 들으면서 오늘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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