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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종양 재활일지

[재활일지]홀로서기

스물일곱청년 2020. 11. 18. 19:06

본격적으로 일어서기 시도를 시작했다. 여전히 팔엔 주삿바늘이 꼽혀있지만 컨디션은 많이 회복됬다. 얼마 전 혈액검사 결과가 다행히 좋게 나왔다. 염증 수치가 5배 이상 내려갔기 때문에 머지않아 곧 링거를 뺄 것 같다. 한 번씩 일어서는 동작을 취할 때면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해 식은땀과 메스꺼움이 올라왔었다. 어제는 눈을 뜨고 첫 타임(오전 9시)에 일어서는 도중 약간의 어지러움이 있었다. 그럴 땐 숨을 깊게 마시고 다시 앉은 다음 맥박이 안정될 때까지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라고 했다.

 

멀쩡 할땐 걸어 다니는 것이 전혀 어렵다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근데 다리가 마비된 이후에는 보행 자체가 힘이 들었고 그동안 수많은 시도와 거듭되는 실패를 겪었다. 한두번 해봐서는 안됐고 매일같이 일어서는 연습과 기립기 및 보행연습을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아직까지 혼자서 일어설 순 없지만 제법 일어서 있는 자세가 만들어지고 있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봐도 될 것 같다.

 

나는 흉추손상환자기 때문에 몸을 지탱하는 허리근육과 배힘이 많이 부족하다. 휘청거릴때도 많고 실제로 보행연습을 할때에도 가장 복부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몸의 중심이 깨지는 순간 고목나무 쓰러지듯 그대로 땅으로 쳐박혀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 한번 혼자서 걸어보려다 중심을 잃고 엉덩이를 크게 찧었던 적이 있다.

 


욕창수술을 한지 한달이 다되어가는 시점에서 피부는 많이 아물었다. 골수염으로 인한 구멍이 뚤렸던 피부에 엉덩이 피부조직을 밀어서 메우는 작업을 했고 초기에 있었던 열감이나 염증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몸에 또다른 큰 흉터가 남아 속상하다. 몸에 상처한번 없었던 내가 하반신마비와 더불어 합병증으로 인한 수술까지 하게 되서 컨디션이 많이 떨어졌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을 후회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 닥칠 일들에 집중해서 다시 재활을 시작하고 있다.

 

땅을 디디는 힘은 많이 부족하지만 미세하게라도 조금씩 느껴지고 있다. 전보다 확실한 다리힘의 느낌과 앉아서 팔을 떼고도 꼿꼿하게 세울 수 있는 허리힘이 이전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수술한지 얼마안되었기 때문에 딱딱한 바닥이나 장시간 앉아있긴 힘들다. 그래서 최대한 짧은 시간안에 온힘을 다해 허리에 집중한다.

 

1년동안 총 5번의 재활병원을 옮겨다녔고 여러 선생님들과 재활을 하면서 느낀점은 대부분의 치료는 비슷한 형식으로 흘러간다. 앉아서 중심을 잡고 중심이 잡히면 서서히 일어서고 일어서면 한발씩 떼는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좋아진다. 물론 한번 손상된 신경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학적인 소견이 있지만 사람마다 신체회복량이나 회복속도, 예후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나의 바지는 1년째 환자복이지만 1년후엔 남들처럼 멋진 바지를 입을꺼야.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사람은 아직 젊기 때문에, 고작 1년밖에 재활한지 얼마안됬기 때문에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고 보조기를 걷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으니 휠체어에 적응해서 빨리 사회로 나가라는 사람도 있었다. 둘 다 맞는 얘기지만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만약 내가 보조기를 차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더라면 난 애초에 휠체어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가슴아프겠지만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했는데도 안되는 거면 진짜 안되는거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몸은 조금씩 변화의 기미가 보이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허름한 환자복을 입고 대소변장애로 인해 기저귀를 차고 있지만 머지않아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고 있다. 우리집 강아지와 선선한 바람을 느끼면서 동네한바퀴를 돌아다녔던 순간, 친구들과 술한잔하며 일상이야기를 하는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다시 그때로 갈 수 있을거야라고 항상 다짐한다. 아프고 나서 몸은 약해졌지만 심적으로는 많이 단단해졌다.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려는 마음이 생겼고 험난한 세상을 나아가기 위해서 끝없는 노력과 자기반성이 성공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는걸 뼈져리게 느꼈다. 직장의 취직도 건강의 회복도 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원하는 걸 이뤄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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