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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종양 재활일지

[재활일지] As time goes good bye

스물일곱청년 2020. 10. 31. 13:20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척수종양으로 인한 9간의 대수술. 정신 차려보니 내 감각은 명치 부위에서 멈춰있었고 그때부터 재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그 시점에서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본다면 심적으로 많이 건강해진 것 같다. 여전히 내 다리는 감각이 없지만 처음 그때처럼 재활운동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언젠간 내 간절함을 내 몸이 알아차리고 다시 일어날 것만 같아서이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마음처럼 쉽게 조종되지 않는다. 난 또 한 번 수술을 했다. 꼬리뼈에 생긴 욕창이 골수염으로 진행돼서 전신마취 후 3시간가량의 수술을 하면서 3주 정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똑바로 누울 수도 그렇다고 옆으로 장시간 누워있을 수도 없었다. 한쪽 방향으로 오랫동안 누워있으면 그 부위에 또 다른 욕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를 꼬박 엎드린 채 생활했다. 

 


온갖 주사와 약을 반복적으로 복용하다보니 내 몸 곳곳에는 바늘 자국이 가득했고 심적으로 많이 위축됐다. 일주일에 2-3번 피를 뽑고 알 수 없는 링거들이 내 몸속에 스며들었다. 바깥세상은 어떨까, 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가을의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하루는 어떨지 궁금했지만 쉽게 물어볼 수 없었다. 괜스레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알게 된다면 나는 그것들을 할 수 없다는 절망이 내 머리를 쿵 하고 때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불안과 초초함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을까. 다음 주부터는 다시 재활을 시작할 수 있는 안도감은 있지만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수술부위가 터져서 재수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마비된 내 몸을 다시 풀어줄 수 있을까.

나는 노력없이 이룰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뿐 영원하진 않는다. 지난 26년의 생활 동안 건강의 소중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 채 살아왔다. 살기에 바빴고 친구 만나느라, 애인 만나느라 여럿 핑계적인 이유로 나의 건강은 감각의 마비된 듯 무뎌져버렸다. 돌이켜보면 다 나의 부주의함이었고 조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 

 

다시 걷고싶다. 남들처럼 멋있고 예쁜 옷들을 사서 입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해 다니며 인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다. 밖을 볼 수 없어서 나는 노트북이라는 도구를 통해 바깥세상과의 소통을 한다. 요즘 유행하는 옷들은 뭐가 있는지, 최근 이슈화된 뉴스는 뭐가 있는지 찾아보고 뒤져보면서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의 간절한 마음을 신이 알고 있다면 단 한 번의 기회라도 주었으면 좋겠다. 급하지 않게, 하나하나씩 퍼즐 조각 맞추듯 다시 일어서기 위한 노력들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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