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에겐 여동생이 한 명 있다. 2살 터울인 동생과 나는 어렸을 때 정말 친하고 재밌는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중학교를 입학한 후 사춘기와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자연스레 거리가 멀어졌다. 서로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했고 피해받는 것도 싫어했던 터라 괜히 붙어있으면 어색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려웠다.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던 나는 어렸을 적 레슬링을 티비로 보면서 동생과 엎치락뒤치락했었고 같이 장난감도 조립하면서 나름 재밌게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론 말을 길게 해 본 적도 없었고 딱히 연락을 주고받을 것도 없었다. 그런 사이였는데 내가 재활을 시작하고 나서 조금
씩 우리의 사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벼운 메세지를 주고받았다. 흔한 안부 하나 몇 번 보낸 적 없어서 어색했다. 아주 오랫동안 안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횟수가 점점 증가했고 요리에 제법 일가견이 있는 재주를 이용해서 맛있는 음식들을 엄마를 통해 전달해주었다. 동생에게 무엇을 받아본 적도 줘본 적도 몇 없었는데 이렇게 받으니 얼떨떨하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받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이 항상 싸우지 말고 우애좋게 지내라 했었지만 어느 순간 살갑게 대하는 것을 잊어버려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프고나서부터 부쩍 나를 정말 걱정해주는 마음을 느꼈다. 동생이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나에게 응원 메시지도 보내주고 책도 보내주고 맛있는 음식들도 만들어주면서 나도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이런 것들을 서로 교류하면서 자연스레 동생과 말을 섞었다.
여태껏 내 삶을 살아가기 바빴다. 지금에야 동생한테 신경한번 제대로 써주지 못해서 미안한 감정이 든다. 만약 내가 멀쩡했고 동생이 나처럼 휠체어에 앉아있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동생에게 맛있는 밥 한 끼, 응원의 메시지를 제대로 한번 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서먹서먹하고 달갑게 지내지 않은 터라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아마 동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표현하는 법이 둘 다 서툴기 때문에 낯간지러운 말이나 행동을 못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맙다. 나에게 먼저 손을 뻗어 도움을 주고 힘을 주어서 정말 고맙다.
남매든 자매든 누군가에겐 정말 죽고못살정도로 붙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원수지간이 되어 서로에 등에 칼을 꽂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 해도 그들 모두는 어렸을 적, 동생이라는 존재와 형누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이지 않은가. 지금은 어색하고 대면 대면하더라도 작은 관심 하나라도 천천히 시도해보면 멀었던 관계들이 퍼즐처럼 하나하나 맞춰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척수종양 재활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활일지] 나의 가장 빛나는 순간 (2) | 2020.08.16 |
---|---|
[재활일지] 행복한 삶은 어떤것일까 (6) | 2020.08.15 |
[재활일지] 나무가 아닌 숲을 보자 (8) | 2020.08.11 |
[재활일지] 내가 꾼 꿈은 우연일까, 불행일까 (6) | 2020.08.09 |
[재활일지] 마음의 온도차이 (3) | 2020.08.06 |
- Total
- Today
- Yesterday
- 하반신마비
- 다시
- 척수종양
- 재활치료
- 나에게
- 화이팅
- 자신감
- 희망
- 물리치료
- 할수있다
- 용기
- 마음가짐
- 척수손상
- 나를
- 하지마비
- 마음을
- 재활운동
- 믿음
- 척추
- 국립재활원
- 재활
- 포기하지말자
- 행복
- 재활일지
- 병원생활
- 의지
- 회복
- 노력
- 소중함
- 사지마비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